광주 민주화 운동을 택시 운전사의 눈으로 그려낸 실화.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끔찍한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김사복 씨와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용기에 감사드리며,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 택시 운전사]를 리뷰한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시대적 배경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암살.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군부독재 제5 공화국. 전두환 노태우 하나회가 중심이 된 신 군부세력이 나라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개학을 맞이한 대학생들은 본격적으로 반란군들에게 시위를 이어 나갔고. '서울의 봄'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자 5월 17일 신 군부세력은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5월 18일 광주에는 대규모 시위가 이루어진다는 말에 전두환의 지시로 계엄군은 광주로 내려간다. 5월 27일까지 계엄군들은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일부 양심 있는 기자들이 신문 기사를 쓰지만 사주받은 동료 기자들의 방해로 언론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 광주는 깡패들의 무장 폭동으로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보호 중이라는 내용이 보도된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2017년 작품으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시대적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다. 광주의 실상을 택시기사 김만섭의 눈으로 그려 낸다.극중 택시기사 김만섭은 실제 인물 김사복씨다.
서울 택시 운전사 김만섭은 광주의 진실은 본다.
서울 택시운전사 김만섭(김사복씨)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울 시내를 달린다. 시내는 체류탄이 터지는 시위가 계속 이어졌고 익숙하게 바라보는 만섭은 시위하는 장소를 피해 이동하다 시위하는 학생이 갑자기 튀어나와 백밀러가 부서진다. 학생은 도망치고, 만섭은 돈이 없지만 생계를 위해 백밀러를 수리한다. 시위는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 만섭을 더 힘들게 만든다. 계엄령 라디오 소리에 별생각이 없이 라디오를 끈다. 만섭은 친구 집에서 월세를 살고 있고 월세는 밀려있다. 친구 아들에게 무시당하는 딸을 보며 속상 해 한다. 하나뿐인 이쁜 딸 예쁜 구두도 사줘야 하는데 계엄령에 손님들이 없어 질까 걱정을 하는 먹고살기 바쁜 가장일 뿐이다. 우연히 식당에서 광주로 갔다가 저녁에 올라오는데 10만 원을 받기로 했다는 말을 듣는다. 신난 발걸음으로 밥을 먹다 말고 손님을 가로채러 간다. 어떤 바보가 광주까지 10만 원이나 주나. 반갑게 피터(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보며 자긴 사우디로 갔다 왔다면서 콩글리쉬로 영어 인사를 나누며 들뜬 마음으로 광주로 향한다. 광주에 도착할 때쯤 군 헬기를 보게 되고 도로 입구는 군부대 차량으로 막혀있다. 위협을 느낀 만섭은 후진한다. 어떻게든 광주로 가야 한다. 10만 원을 받아야 하는 만섭은 샛길을 찾아 광주에 도착한다. 광주 거리는 시위 현장으로 정신이 없었다. 거기서 만난 대학생 구재식은 촬영하는 피터를 반갑게 맞이하며 통역을 한다. 광주 길거리 남녀노소 모두 나와서 시위를 하고 있다. 낯선 외국기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시민들. 광주는 고립되어있었다. 광주 방송국에서는 시위 뉴스는 볼 수 없다. 광주의 상황을 누군가가 외부로 알려 주어야 한다. 만섭은 옥상에 올라가 과자를 먹으며 별 관심 없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서울에서도 대학생들은 시위를 했기에 무심하게 쳐다본다. 하지만 광주는 달랐다. 군인들은 무고한 시민들과 대학생들은 총과 대검에 찔려 죽였다. 만섭은 광주의 진실을 보고 두려웠다. 집에는 딸이 혼자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그냥 올라가기는 일당 10만 원을 받을 수 없었기에 피터를 따라다니며 처참한 관경을 계속 목격한다. 외국 기자를 본 군부에서는 피터를 찾기 시작하고 서울 번호판 택시를 잡으라 한다.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안 만섭은 피터를 버리고 황 기사으 도움으로 번호판을 바꿔 달고 아침 일찍 샛길로 순천을 향한다. 고장 난 차를 고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뉴스에서는 광주 사태를 깡패 폭력 집단을 처단 중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주 길거리에서 건네받은 주먹밥을 먹으며 울먹인다. 다시 광주로 가는 만섭. 병원에는 대학생 재식이 죽어 있고 그 옆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있다. 피터는 이미 넋이 나가 있다. 만섭은 피터의 손에 카메라를 쥐어주고 정신 차리고 빨리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섭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죽어 가는 걸 볼 수 없어 생명처럼 아끼는 택시를 방패 삼아 사람들을 구한다. 구하고 쓰러지고 구하고 쓰러지고. 군인들은 앞으로 전진하며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만섭과 피터는 처참한 광경에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광주 기자가 피터에게 부탁한다. 지금 나가지 못하면 영원히 못 나간다. 우린 할 수 없지만 당신은 광주의 진실을 말 할 수 있다. 제발 광주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달라. 만섭은 피터를 데리고 탈출해야 했다. 샛길도 이젠 군에 의해 막혀있다. 서울 번호판을 들키지만 중사 덕에 둘을 무사히 탈출한다. 만섭의 도움으로 출국하는 피터는 만섭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하지만 피터가 자신을 찾으면 위험해질 거라는 걸 알고 다른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준다. 피터는 출국해 광주의 잔인한 진실을 전 세계에 보도한다. 토마스 크레취만 배우
광주 시민들의 상처를 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한국에서 김사복 씨를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전우라며 그를 그리워했다. 김사복 씨는 1984년에 돌아가신 상태였다. 힌츠페터는 "진실을 말하는 거는 기자 자신의 임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죽을 각오로 광주 시민들의 상처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는 베트남 전쟁도 취재했지만 광주처럼 많은 시체들은 처음 봤다고 말한다. 국제 인권단체에서는 광주의 영상을 보고 나치 돌격대에 비유할 정도였다. 폭도나 간첩이 일으킨 사건으로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을 위르겐 힌츠페터 기지와 김사복 씨의 용기로 알릴 수 있었다. 37년 만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영화. 역사는 잊혀져도, 생략되어서도 안된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그들을 위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게 우리들의 남은 과제이다. 잊지 말아야할 슬픈역사를 담은 영화 [택시 운전사]를 추천한다.